[선자령]바람에게 완패당하다.

 

 

또 갔다, 대관령에.

일주일 내내 하얀 설경이 눈 앞에 아른아른….
안되겠다 싶어 알아보니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해서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모 산악회에 있다.
냉큼 신청하고는 며칠을 더 설레야 했다.

드디어, 지난 토요일.
어둑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서 출발장소를 향했다.
그러나 날이 훤~하게 밝아서야 나를 태운 버스는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거라니 잠을 청해야겠다.
그러나 잠이 올 턱이 있나? 설렘에 마음은 벌써 대관령에 가 있는데.^^

잠깐 졸았나?
어수선한 소리에 깨어보니 거의 다와가는지 사람들은 산행준비로 부산하다.
대관령의 바람을 좀 알기에 나도 단단히 채비를 한다.
 

     

     

 
야홋! 대관령이다.

차들이 많아서 그런지 휴게소에 진입도 못하고 대관령 길바닥에서 내리란다.
모자와 장갑 그리고 목도리까지 둘둘 말아 눈만 빼꼼 낸 채 완전무장을 했음에도 귓전에 윙윙대는 바람이 매섭다.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세찬 바람에 날리는 눈이 모래알처럼 얼굴을 때려 고개를 들 수 없다.
이처럼 날카롭게 날을 세운 매서운 바람은 처음이다.
고개숙이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몸도 가누지 못하고 휘청휘청.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은 어찌나 많던지…. 예정된 코스로 가다가는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가게 생겼다.

 

 

몇몇이 하산 코스인 양떼목장 담을 타는 능선길을 택한다.
그 사람들을 쫓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느새 작은 골짜기로 들어선다.
아아.. 이처럼 멋진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겨우 쌓인 눈을 다져 길을 낸(전문용어로 '러셀'이란다) 곳을 살짝만 비켜 발을 딛으면
엉덩이까지 푹 들어간다.
(긴 다리가 다 잠기는 걸로 봐서 2m 정도 쌓였을리나 ^^;)
그러니까 눈길은 허공에 떠 있는 셈이고 적설량은 1m를 훌쩍 넘긴 모양이다.

     

     


나무숲이라 그런지 바람이 자취를 감췄다.
햇살 받은 눈은 그림자까지 만들어 뚜렷한 음영과 윤곽을 만들어내며 반짝이고 있어 더 환상적이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사진으로 남기려 똑딱이를 꺼내 드는데 몇 장 찍지도 못하고 배터리 아웃이다.
충전이 안 된 것이 아니고 너무 낮은 기온에 작동이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이런 떡을할~ ㅠㅠ
 
삼십 분쯤 올랐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요기를 채우고 있다. 

- 천천히 쉬었다가 가세요. 어차피 조금 더 오르면 끝이에요.
- 왜요?
- 능선위에 부는 칼바람에 항복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러셀이 안되어 길이 없어요. 

이런, 낭패다.
지난 주, 양떼목장만 다녀가면서 얼마나 아쉬웠던 선자령이었던가?
그런데 선자령 초입에서 그만 가야 하다니.. ㅠㅠ 
 

     

품에 넣었던 카메라를 꺼내 사진 몇 장 더 찍고 것도 부족해 아이폰으로 꾹꾹 누르며 탄성을 자아낸다.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어찌 그리 예쁜지...
바람에 뺨이 얼얼해도, 너무 행복하다.^^ 

다시 멈췄던 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길이 나오는 것을 보니 능선이 가까워졌나 보다.
아, 그런데 바람의 소리가 심상치 않고 쌓인 눈이 버람에 날리는 것이 폭설이 내리는 꼴이다.

바람이 지난 자리는 고스란히 그 자국을 남겨 사막의 모래언덕과 같이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모습에 다시금 반해서 또 찰칵!! 


     

      

눈 앞에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앞이 탁 트인다.
양떼목장 꼭대기와 맞닿은 곳인데 바람에 날리는 눈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고 길도 끊겨 나아갈 수가 없다.

담장 너머로 한적한 양떼목장이 눈에 들어 온다.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이런!
 

    

 
예정 하산 시간에 맞추자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우짜노?
천천히 하산하며 눈 위에 벌러덩 누워 내 자리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설경을 맘껏 즐기며 하산했다.


     

      

암튼, 대관령에 또 아쉬움을 남겨두고 가야 하는 구나.
이렇게 아쉬운 것을 보니 이 겨울이 지나기 전에 몇 번은 더 오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