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에 서다..

 

ㅇ장 소 : 대청봉(1,707.9m)
ㅇ일 자 : 2003.12.16(화)
ㅇ소 재 : 강원 속초시, 양양 서면, 인제 북면
ㅇ날 씨 : 맑고 포근함
ㅇ코스 구간별 시간 : 한계령휴계소-1397봉-끝청봉-중청봉-대청봉-오색매표소(8시간 소요)

대청봉(1,707.9m).

그 웅장함에 다시한번 놀라워했다.
대청봉을 당일로 다녀온다는건 불가능한 줄 알았다
한번도 그리해 보지 않았기에..
무박 또는 비박을 하면서 오른 설악이었기에..
어젠..참으로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했다.
아마도..도로가 잘 닦여진 덕분이리라..

서울(대치동)에서 6시에 출발을 하였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차에 타자마자 단잠에 빠졌다.
두어시간이 흘렀으려나.
주최측에서 준비해온 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하고..
잠시후면 한계령에 도착한다는 이야기에..주섬주섬..몸을 챙겼다.

9시쯤 한계령 도착.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등산화끈을 질끈~동였다.
그리곤..설악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108계단길..이어지는 급경사길..

- 으휴~ 힘들다.

기온차가 심할거라 하여 옷을 겹겹이 입었더니..
더 힘든것 같아..옷을 하나 벗어 베낭에 넣었다.
어?..그러다 보니 일행의 그림자도 안 보이네..-.-

혼자 성큼대며 걸음을 내딛었다.
한참을 혼자 오르막, 내리막, 바위위를 끙끙대다보니
1380m 서북능선의 삼거리표지판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 홀딱 지나있었다.
왼쪽은 대승령, 오른쪽은 대청봉으로 가는 길..
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먼저 오른 이들의 발자취만 따라..무작정 걸었다.

능선을 휘휘돌아 북쪽방향으로 갈때면..
어김없이 눈이 쌓여있고..
그 반대의 남향쪽을 향할때면..
봄길을 걷듯..포슬포슬한 땅이 나를 맞았다.

혼자인 시간을 맘껏 즐길무렵..밧줄까지 드리워진 높은 암봉..
두손까지 합세하여 엉금거리며 온 힘을 다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기척이 없다.

- 아앙..어쩌나..이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갑자기 걸음을 빨리했다.
저쪽에서 한 분이 카메라 셧터를 누르고 계셨다.
아마도..이 아름다눈 설악을 담으시려나보다.
그 어르신은 내산행의 동무를 해주셨다.
힘들게 혼자 오르다보니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1459고지라고 말씀을 하시며, 앞만보고 줄행랑 치지말고..
경관을 즐기며 산행을 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 우와~~멋찌다

서북쪽으로 펼쳐진 용아 장성 연봉들..
설악능선중 아주 고약한 코스가 용아능선이라고 말씀하시며..
눈앞에 펼쳐진 봉우리 하나하나를 가르키며 설명을 해 주셨다.
역시..이웃을 잘 만난덕분일까?..^^*

이제부터는 아기자기한 능선길..발끝에 전해오는 눈의 푹신함에..
장난스레 아무도 밟지않은곳만 밟아도 본다.

기온차가 심한탓일까?
금방 폭신하던 눈이..두다리로 콩콩대도 꿈쩍을 안하다.
이젠..아이젠을 부착하라 말씀해 주시며..
빼빼마른 모습에 안스러웠을까? 스틱을 선뜻 내어주신다.
한결..몸의 중심잡기도 수월했다.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은마음이다.

한계령을 출발한지 4시간만에 끝청봉에 다다랐다.
때마춰, 지금쯤 대청봉에 도착했으려나 하는 온 친구의 메시지..

허미~ 아직 끝청인디..
아직은 1시간은 족히 가야한단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람이 거세다는 증거인지..나무들이 내 발아래 납짝~ 업드려있는듯.
키가 작은 소나무에서..바람결에 소나무향을 뿜어냈다.

아직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눈꽃의 아름다움은 없다해도..
발길이 닿는 부분은 눈길이었기에..그래도 좋았다.
골짜기를 휘휘돌아 내뺨을 훑은 바람은..
그래도 아직은 부드러움이었다.

나중에 맞는 대청봉에서의 바람에 비하면..
새악시의 부끄러움이라 할까?..^^*

저 멀리 중청봉과 대청봉이 보이건만..
에고..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기만 한다.
힘내라고..얼마 안남았다고..격려해주시는 그 어르신 덕분에
사뿐사뿐은 아니라도..많이 지치지 않고..
중청봉의 옆을 돌아 한계령 출발 5시간만에 대피소에 도착을 하였다.

시계를 보니 막 2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려갈 시간을 넉넉히 3시간을 잡으려니..아무래도 마음은 급하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점심요기를 하려하는데..
너무 지쳐서 였을까?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밥은 꺼내지도 않고..컵라면의 뜨거운 국물만 조금 홀짝였다.
초코바 하나와 바나나하나로 대충 배고픔만 달래고..
다시 대청봉을 향했다.

그런데..이제와는 사뭇다른 바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거친 바람은 내 손끝을 얼얼하게 만들고..
몸은 휘청휘청..아늑한 대피소로 되돌아가고픈 충동까지 들게한다.
눈도 제대로 뜨지못한 채..바람에 휘청대며..그렇게 오르고 또 올랐다.

아아..드디어 1707.9m의 대청봉이다.
누가 그랬던가..
지리산의 웅장함과
금강산의 화려함을 다 갖춘산이 설악산이라고.
정말이었다.
산세의 웅장함과..능선 사이사이에 빛나는 화려함..
그치만..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엔 바람이 너무 거칠었다.
바람에 손이 흔들려..자꾸만 어긋나는 셧터.

- 에휴..눈에만 넣어가라는 뜻인가부다..-.-

대 자연앞에선 그 경이로움에 감탄과 침묵..
날 온전히 받아준 모습에 감사를 느꼈다.

 

같이 산에 오른 사람 몇몇이 대청봉비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나도 찍어 주신단다.
어색한 웃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히~

이제부터는 재미없는 하산길..
오색쪽으로 방향을 잡고..눈길을 내려갔다.
만들지 얼마 안됐는지..나무로 만든 계단이 이쁘다.
그 이쁘다는 생각도 잠시..돌투성이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길 옆으로 졸졸..많지않은 계곡물이 흐른다.
그 물소리만으로도 내마음에 즐거움이 생긴다.
가끔씩..서로 스치는 산님들이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아직도 낯선이들과 인사를 주고받는것이 무척 어색하다.
아마도..마음을 온전히 산에 풀어두지 못함이리라.

저 밑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올라온다.
모회사의 신입사원극기훈련이란다.

- 에고.. 좋을때다.

씩씩하게 정상을 향하는 그네들을 보며..
젊음의 패기는 후줄근했을지라도..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으로
세상을 내것으로 만들어야지 하는호기도 부려본다..^^;

어느덧 머리위에서 빛나던 햇빛은 부드러움으로 산에 걸쳐져 있다.
어두워지면 하산길이 더 힘들겠다는 생각에..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르락 내리락..재미없는 길을 걷다보니..
드디어 마지막 철계단이 나온다.

에고~반가워라.
아아..드디어 오색매표소가 보이고..
한계령으로 향하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당일로는 어려울것 같았던 대청봉을 내 품에 안고왔다.
총 산행시간 8시간만에 말이다.

차에 오르자 산행축하를 위해 동동주 한잔을 건넨다.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동동주의 달콤함에 취해..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