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바람속에 서다

 
 

 

 

ㅇ장 소 : 설악산(1,707.9m)
ㅇ일 자 : 2012. 6. 29~30
ㅇ소 재 : 강원 속초시, 양양 서면, 인제 북면
ㅇ날 씨 : 비,비,비...강풍
ㅇ코스 구간별 시간 : 오색-설악폭포-대청봉-중청대피소-원점회귀(총 11Km)

 

대청봉을 2008년 여름에 다녀왔으니 꼭 4년 만에 다시 다녀온 셈이다.
이번 산행계획은 발단은 주체하신 분이 산행보다 청봉 주변에 핀 바람꽃을 사진으로 담으려 계획 한 것이다.
물론, 나야 바람꽃보단 설악 품이 더 그리웠던 것이고.^^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예고된 날씨는 '주말 비'에서 꼼짝을 안 한다.
좀 변동이 있으려나 하고 기다렸지만, 설상가상으로 장맛비의 시작이란다.
산행을 취소하느냐, 마냐..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가자는 쪽으로 결정, 예고된 우중산행이다.
4년 전 설악 품에 들 때도 비와 함께했기에 그다지 걱정은 안 된다.

모처에서 만나 드디어 설악을 향해 출발하는데, 벌써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도저히 산행할 날씨가 안되면 산행을 포기해도 된다는 의견이었기에 서두름 없이 천천히 갔다.
그럼에도 서울~설악 도로가 잘 정비된 덕분에 두 시도 안되어 오색주차장에 도착하고 말았다.

비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하면서 무거운 카메라를 차에 두고 갈까 하다
혹여, 비가 잠시라도 그쳐 아쉬워 하지 말고 가져가라는 조언에 무거운 카메라를 배낭 깊숙이 넣으니 배낭이 묵직.
에구구~.

(다른 분들은 여분의 렌즈까지 가져가느라 엄청 무거워 보이니, 무겁단 말도 못한다.^^;)

오색주차장에서 오색 들머리까지는 1Km의 거리.
비 오는 캄캄한 밤길에 1Km의 거리는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도로를 막 들어서는데 지나던 차 한 대가 서더니 우리 일행에게 어디로 가느냐, 태워준단다.
아이고, 얼마나 감사한지...염치불구하고 짐칸, 뒷자리에 나눠타고 오색 들머리에 도착했다. 

 

 

     

 

  

오색들머리에 도착하니 자바라식의 출입구가 잠겨있다.
3시부터 등산허용시간이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 지난번에는 출입구를 넘어갔는데...

(슬쩍 말을 흘렸다)

- 그래도 돼요?

(냉큼 넘어온다.ㅋㅋ)

- 안되는 것이겠지만 지난번엔 버스 한 대의 사람이 다 글케 넘어갔어요.
- 그럼 우리도 그럴까?
- 그럽시다~.

아, 괜히 말을 꺼냈나 보다. ㅎㅎ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컴컴한 출입구를 훌쩍 잘도 넘는다.
난 높은 출입구를 넘느니 가는 몸을 문 사이로 빠져나가기로 하고 몸을 막 빠져나가려는 찰라,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
아,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틈에 낀 채 우리는 모두 얼음이 되었다. ㅠㅠ
이미 일행은 출입구 안쪽으로 다 넘어간 상태다.

- 그냥 줄행랑칠까요?
- 안돼, 그러다 쫓아오면 어째요..
- 기다려 보자고요.

한참 후 국립공원 직원이 옷을 갖춰 입고 나오더니 문을 열며 도로 나오란다.
혹여 있을 사고 때문에 시간 안에 들여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에휴~.
몰래 들어가려던 해프닝은 이렇게 끝이 나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웃기라며 서로 보며 낄낄, 깔까, 하하, 호호...^^

2시 45분이 되자 등산을 허용한다.
다행히 비도 주춤대더니, 그쳤다.
가뿐한 마음으로 설악 품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데, 그 느낌이 사뭇 황홀하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산길은 5Km의 최단 거리이다.
그러나 그만큼 경사도는 급경사라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들머리를 빠져나오자마자 급경사의 계단에 헉헉댄다.
장맛비가 시작된 밤에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우리 일행은 우리가 들바람꽃에 미쳤다며 서로 킬킬 댔는데
우리 말고도 설악에 미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이번에 같이한 분들 모두 산행은 처음 같이한 분들이라 산행속도가 제각각이다.
한 분은 쏜살같이 앞서 가고 그담에 내가 가고, 한 분이 뒤처지니 자연히 다른 분이 보조를 맞춰가며 산을 오르게 된다.
어차피 비 소식에 일출도 못 보니 천천히 오르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오르니 그리 힘들진 않다.
다만 카메라가 들어간 배낭 무게에 어깨가 좀 버겁다.
 

 

     

 

 

조용한 산길엔 랜턴 불빛만이 등산객의 흔적이다.
두 시간 좀 못되었을까? 작은 쉼터가 있고, 먼저 오른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엄청나게 많이 올라온 것 같았는데, 오색에서 꼴랑 1.7Km 지점이란다. 에구구~
예상시간보다 1시간은 더 걸려야 대청봉에 오르겠다.
잠시 쉬며 목을 축이고 다시 설악의 최고봉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출발은 일행이 같이했는데, 제각각 산행속도에 홀로 산행인 구간이 많다.
홀로 가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을 기다려주기를 반복하며 산행을 하지만, 산행은 어차피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그런가 캄캄한 밤길을 랜턴의 작은 불빛에 의지해 올라가도 그다지 겁나진 않다.
드디어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비옷을 꺼내입게 한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 판쵸를 두고 비닐 우의를 입었더니, 어휴 나중에 바람 때문에 아주 고생을 했다.
어쨌거나,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 사색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으로 좋다.
밤을 홀딱 지새우고 산행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설악이 그립긴 했다 보다.^^*

한참을 가다 보니 고도가 1,580m 지점이라는 나무 표식기가 있다.
시간을 보니 6시 10분 전이다.
세상에, 오색 들머리의 고도가 해발 340m이니 1,240m 오르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얼마 남지 않은 청봉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앞서 간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곤 헉헉대는 내게 양갱이를 하나 꺼내주는데, 어찌나 꿀맛이던지..^^

(근데, 양갱이는 원래가 꿀맛이다. ^^;)

잠도 못 잔 상태에, 비 때문에 간식을 먹지도 못하고 계속 오르느라 비실댔는데 양갱이 하나로 불끈! 힘을 얻는다.
고마워요, 정말 잘 먹었어요.^^*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대청봉을 향해 가는데 능선이 가까울수록 바람이 심상치 않다.
점점 거세게 부는 바람에 비까지 날리니 몸이 휘청휘청 한다.
대청봉에 다다를수록 바람에 날아갈 정도의 강풍으로 얇은 비옷이 찢기고,
빗방울은 어찌나 세찬지 우박으로 맞는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게 휘둘린다.
인증샷을 커녕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같이 간 분은 카메라를 꺼내 비닐 속에 넣은 채 바람의 대청봉을 담는다.
역시 저래야 제대로 '꾼'이지, 싶다.^^ 

 

 

     

 

  

대청봉 주변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꽃 꽃 하게 비바람을 견디며 방실대고 있다.
한 번 눈 맞춤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미련도 없이 중청대피소를 향해 내려간다.
평소는 대청봉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있던 중청대피소가 오리무중이다.
우박처럼 뺨을 때리는 빗방울에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겨우겨우 내려가니 대피소까지 왜 그리도 멀던지….

어렵게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니 비에 쫄딱 젖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비옷을 벗고, 젖은 옷과 배낭을 정리하다 보니 후미에 있던 일행이 도착한다.
아이고, 두 분 모두 수고했어요!!!

치매 초기증상인지, 점심으로 사 두었던 전투식량을 몽땅 빼놓고 왔는가 싶더니
이번엔 아까 차에서 짐 정리하면서 수저까지 빼놓고 왔다.
아이고, 뭔 정신으로 사는지 참 용타!

 

 

     

 

 

 

    

 

 

아무튼, 반찬만 들고 온 나 때문에 햇반으로 아침 해결하고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잠시 쉬기로 하며
일행 두 분은 대피소 한쪽에서 눈을 붙인다.
그 모습을 그냥 두기 아깝다며 아이폰으로 담으며 킬킬댔다.

한 잠자고 일어났는데도 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린 하산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원래는 한계령 쪽 서북능선을 타기로 했는데, 그쪽에서 오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니 바람을 안고 가야 하는 입장이라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다.
계획을 급 수정, 들머리였던 오색으로 다신 하산을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강풍의 대청봉을 어찌 또 통과할지 막막하다.
더 있어도 뾰족한 수도 없으니 일단 부딪히기로 하고, 다시 대청봉을 향한다.

(여기부터 대청봉 통과하기까지는 올라올 때랑 이하동문이다.)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어준다니 카메라 앞에서 나란히 히죽대는 우리 일행들. ㅎㅎ

 

 

     

 

 

올라왔던 길이라 그런가 힘들이지 않고 하산을 하는데, 올라올 때는 깜깜했던 길이었길 망정이지
어쩜 그리고 가파른 계단 길의 연속이었던가? 휴~

하산할 때는 여유도 생겨 야생화들과 나무들을 보며 서로 이야기도 하고 도란거린다.
단, 처음 쏜살같이 올라갔던 오늘의 막내, 아○○○님은 또 혼자 냅다 하산하고 말았다. 

 

 

- 아마 얼른 하산해서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가러 갔나 봐.
- 그렇게 착해?
- 좀 착하긴 하지.
- 그보다 눈 붙이러 간 거 아닐까?

귀 좀 간지럽지 않았나 모르겠다.ㅎㅎ

드디어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가 저 멀리 보인다.
우리의 추측대로 일찍 하산 한 분이 차를 날머리까지 가져와
기다리고 있으니 엄청 고마웠다.
더구나 우중산행으로 사진 한 장 없는데,
인증샷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더욱 고마울밖에.  

이렇게 바람꽃을 보려 계획했던 산행에서 바람꽃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대청봉 바람 속에 다녀온 산행을 마무리 한다.

비바람에 다소 힘들었어도 산행기를 쓰는 이 순간도,
또 대청봉의 품을 그리워하며
또다시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본다.

 

 

* 사진은 휴대폰사진 네 장 빼고는 몽땅 함께 동행하신 지인이 찍은 것을 붙여넣기 함.